석굴암은 왜 위대한가

석굴암. 



어릴적 부터 많은 분들이 이런 말들을 들으셨을겁니다
 "석굴암은 위대하다, 우리의 문화 유산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석굴암과 우리 문화 유산이 왜 위대한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보호유리로 꽉 막혀 있는 석굴암을 보고 별거 없네 뭐가 위대하다는거지라고 생각을 하셨을겁니다.  사실 석굴암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이 이름만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시겠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들의 수는 노벨상 수상자보다 더 적습니다.  그 만큼 그 존귀함이나 중요함이 인정받고 있다는 겁니다.

석굴암과 같은 석굴 사원은 이미 고대떄 부터 인도등에서 존재해왔습니다.  4-5세기가 되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도 전파 되게 되구요. 



돈황 막고굴이나 용문석굴(위 사진)이 이에 해당됩니다.

신라에서도 삼국 통일 후 이러한 석굴 사원 건립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지리적 여건이 굴을 파기 힘든 암석이 많고 또 있다해도 석굴을 조성하기엔 지나치게 작았습니다.  때문에 석굴사원의 대안으로 이미 존재하던 천연 동굴안에 불상을 모시는 석굴사원의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군위삼존불>


대표적인 것이 흔히 제2석굴암이라고 알려진 군위삼존불입니다.  사실 군위삼존불은 석굴암보다 100년가까이 먼저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제2석굴암이란 명칭 자체는 옳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천연 동굴만으로는 완벽한 석굴사원을 재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김대성이란 인물에 의해 당시로서는 말도 안되는 기획이 추진되게 됩니다
"석굴을 팔 수가 없다면, 석굴을 만들자!"
 당시의 건축기술로서나 재정적인 면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였습니다만, 김대성은 개인의 힘으로 불국사와 더불어 석굴암의 건설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런 개인의 노력 떄문인지 김대성에 관한 설화가 꽤 많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추진의 배경에는 당시 신라가 삼국통일 후 누리고 있던 막강한 경제적 호황이 바탕이 됩니다.   흔히 말하는 경주에 초가집이 한채도 없었다던 시절이 석굴암 건설기 근래입니다. 



불국사의 탄생에는 이런 경제적 바탕 이외에도 사상적 배경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는 삼국 통일 이 후 서로 적이었던 고구려와 백제 유민간의 통합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민족간의 융합의 사상적 구심점을 제공한 것이 화엄종입니다.  당시 통일의 교학으로 불리며 상호보완과 공존을 중요시 했던 화엄종의 사상은 서로 달랐던 각 유민들간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화엄종의 대표 사찰이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자체가 화엄종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닫힌 공간을 보여주는 석굴암,
서쪽을 향하며 열린공간을 보여주는 불국사 그 자체가 한 쌍을 이루며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상호 보완하며 균형을 이룬다는 화엄종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와 같은 경제적, 시기적 상황을 배경으로 바로 석굴암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럼 이제부터 왜 석굴암이 위대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석굴암은 위대한 첫번째 이유는 그 과학적 우수성 때문입니다. 




글 서두에서 말씀 드렸는데 인공석굴을 만드는 것이 당시로서는 말도 안된다고 언급했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돔형 지붕입니다.

108개의 돌을 이용한 돔형 지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 최초로 등장한 형태입니다. 건축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돔형지붕을 만드는게 그리 쉽지많은 않습니다.  더군다가 저 무거운 석재들을 이용하여 돔형 지붕을 만든다는 것은 정확한 수학적 계산이 바탕이 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인들은 이 힘의 균형을 얻기 위해 동틀돌(사진이서 튀어나온 돌들)을 이용했습니다.  석재 사이에 고리 모양의 동틀돌을 사용하여 서로 균형을 유지하게 되는거죠.









 사실 서양에서는 돔형 지붕에 일찍히 2세기 경에 등장하게 됩니다.(판테온)  그러나 서양의 돔형 지붕은 나무 속을 깎아 무게를 줄여 지붕을 만들게됩니다.  몇 배가 무거운 석재를 통해 지붕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판테온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왜 이렇게 기술적 부담을 안고 돔형지붕건설에 집착했을까요 



당시 석굴암은 재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엄청난 노력이 투자된 건설입니다. 때문에 그만큼의 종교적 신성성을 얻고 싶어했을겁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돔형 지붕은 여타의 건물과 달리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에 냅니다. 돔형 원형 지붕을 통해 하늘의 재현을 보여준겁니다. 중간중간에 튀어 나온 부분들이 동틀돌인데 그 돌들을 통해 별과 구름이 있는 평편하지만은 않은 하늘의 모습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동틀돌이 기술적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활용한 것이지요.



석굴암의 위대성은 또한 그 보존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석굴암은 일제시대와 1960년대 두번에 걸쳐 개보수되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일제시대의 보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멘트로 봉분 전체를 처 발라 버려 원형의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 이야기를 나중에 하고  이 개보수시에 석굴암 밑을 흐르는 지하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떄에는 이 지하수가 어떤 역활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고, 지하수가 석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판단하게 인공적으로 석굴암 밖으로 빼네버리죠.  일제시대의 시멘트 칠과  지하수를 빼내버린 이 결정은 석굴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실 지하수는 석굴암 보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로현상을 아실겁니다.
더운 공기가 차가운 물체를 만났을때 이슬이 맺히는 현상인데 이런 결로 현상은 석재건축물에 치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같이 반폐쇠적인 석조물엔 더 위험하구요. 이러한 위험성을 알았던 신라인들은 석굴암 밑으로 지하수를 지나가게 만듭니다.  지하수를 통해 바닥의 온도를 더 낮춤으로서 결로현상을 바닥에만 생기게 함으로서 중요한 조각과 불상을 보호 하려 한 거죠.
그러나 시멘트 칠과 지하수를 빼내 버린 관계로, 석굴암은.. 여러분이 지금 보시다시피 꽉 막힌 유리창안에 갖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광창설과 더불어 석굴암 논쟁의 핵심이죠) 


이 사진은 일제시대 요네다 미요지에 의해 측량된 것입니다. 10미터에 1밀리의 오차(1/10,000)의 오차도 없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무지한지라 설명을 못하겠네요; 



몇년전에 역사스페셜인가에서 석굴암을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고나온 것이 광창설과 백호(불상 미간의 보석같은것)의 방향입니다.  그때 백호의 방향이 문무대왕릉과 일직선이(방향 28.5도)라 주장했습니다만, 정확하게는 동지날 일출방향(29.4도)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몇가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석굴암의 위대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만, 석굴암이 중요한건 그 미적 가치라 할 수 있겠죠^^ 

 

                                              <사천왕상 중 증장천왕, 광목천왕>

 
                                                      <팔부신중 - 긴나라, 야차>
               





안타깝게도, 현재 석굴암에선 위에 사진들을 보기가 힘듭니다.
잘못된 보수로 인해(복원이 아니죠) 두꺼운 유리벽 밖에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석굴암이 왜 위대한가에 대해 설명해보겠다고 덤볐지만 저도 부족한 관계로 얼마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직접 가서 맘으로 느껴 보는게 중요하지만, 석굴암은 이미 닫혀 버려 얼마나 느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 처럼 조금의 정보와 애정을 가지고 보실 수 있다면 아마 좀 더 많을 것을 얻을 수 있으실 겁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음 좋겠네요


  -자료참고 및 사진 출처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성낙주, 개마고원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유홍준, 창비
   석굴암, 이희춘, 중문출판사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홈페이지(http://www.sukgulam.org/)
   유네스코 홈페이지
   군위군청 홈페이지

by ClassicOct | 2018/11/09 19:59 | 역사1 | 트랙백 | 덧글(0)

오래전 타즈매니아(Tasmania) 여행기

호주 남단에 위치한 조그만 섬 타즈매니아 여행 사진입니다.

사실 타즈매니아는 한국에게 그렇게 알려진 곳은 아닙니다. 연간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호주를 찾고 있지만 타즈매니아 까지 오는 관광객들은 흔치 않죠. 그나마 최근에 대학부설 어학원이 저렴하다는 소문에 많은 학생들이 몰리지만, 여전히 호주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한국인은 적은 편입니다.

호주의 자연환경은 조금 특이한 편입니다.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동식물이 꽤나 있죠. 그러한 호주에서도 타즈매니아는 호주본토와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타즈매니아 타이거와 소수 남은 타즈매니아 데빌은 이름 그대로 타즈매니아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환경보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타즈매니아 섬 전체의 2/3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런 환경 탓인지 타즈매니아 분들은 호주 여타 도시에 비해 매우 친절하면서도 아주 가끔식 외지인에 적대적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들의 사람들은 정말 순박하고 친절합니다. 가끔 Go Mainlander라는 글귀를 보게 되는 정도의 수준일 뿐입니다







타즈매니아의 주도 호바트 시티의 모습입니다.
호주에서 2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한국의 왠만한 시 보다 조그만 곳이지만 가장 잘 발달된 지방자치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멜번에 처음 갔을 떄 남방구의 런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런던 만큼 다양한 문화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런던만큼 변덕스런 
날씨를 지녔기 떄문이죠. 그런데 호바트는 그런 멜번보다 10배쯤은 변덕스러운 날씨를 지녔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호바트는 하루에 4계절의 날씨를 모두 지녔다고 말할 정도랍니다.
호바트의 날씨는.. 정말 지대로 변덕쟁이입니다. 사진처럼 푸르디푸른 하늘을 보여주다다고 급작스럽게 비. 다시 10분만에 맑은 날씨..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지요

덕분에 사진 처럼 무지개는 정말 자주자주 볼 수 있습니다 ^^




타즈매니아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을 뽑자면 단연 이곳 Wineglass Bay입니다.
와인글래스 베이라는 이름은 해변의 모습이 이름 그대로 와인 글래스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사진에선 알수가 없군요--;; 죄송합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이 곳에 갈려면 1-2시간 정도의 등산을 거쳐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조용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름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1시간 동안 흘린 땀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와인글래스 베이 입니다.



다른 많은 해변을 두고 이곳을 최고로 뽑는 이유는.
평화로움이랄까요. 다른 관광지에서는 누릴 수 없는 고요함과 따뜻함을 이곳에선 느낄 수가 있습니다. 
등산이 귀찮아 오지 못하는 분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인지 이 주변엔 캠프사이트가 있고 꽤 많은 여행객들이 이 평화로움 속에서 밤을 지내곤 합니다. 




거친 바다로 유명한 Bicheno입니다. 우리나라 읍내수준 정도의 조그만 마을이지만 주변에 위치한 와인글래스베이등의 
관광지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사진은 비체노의 Blow Hole입니다.




호바트 남쪽에 위치한 Bruny Island의 사진입니다. 페리에 차를 실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친구와 여행하기에는 무척 좋은 곳입니다




Bruny Island의 Cape Bruny입니다.
마치 포카리스웨트 광고를 찍어야 할 것 같은 배경입니다.




타즈매니아 데블입니다. 동물원들을 제외한다면 세계유일하게 타즈매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현재 타즈매니아의 마스코트 같은 녀석들입니다. 
생긴건 귀여운데.. 성격은 보통 사나운게 아닙니다. 시체를 먹는 녀석들이라 턱 힘도 대단하기 때문에 만질려고 손을 내밀었다간..  손이 없어진답니다 ^^

음.. 나름 똑딱이로 열심히 찍어 본 사진 들입니다. 

호바트. 타즈매니아.
잠시만 머물려고 했던 이곳에서 어떻하다 보니 4개월 넘게 머물고 잇네요. 
이 넘의 큰 땅덩어리를 여행했던 지라 너무 많은 곳을 스쳐지나가버렸는데,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그 때는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고. 호바트 역시 너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이란게.. 화려한 건출물을 보고 웅장한 자연의 유산을 보는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따뜻함을 겪어보고, 고생하며 즐겁게 웃고. .이런 것들이 모두가 추억이며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호주하면 빠질 수 없는 녀석..ㅋㅋㅋ

by ClassicOct | 2018/11/08 20:39 | 여행-보물섬 이야기(Tasmania)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